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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그곳에 가면 책마을이 있다 1 - 헤이온 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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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신문을 펼쳐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특히 그랬다. 마치 움직이는 도서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영국은 유행이 참 늦구나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유행이나 대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면서 느리게 살아가는 고집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영국도 많이 변했다. 급속도로 변했다. 이제는 영국 사람들도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산다. 그래서겠지. ‘책’ 읽는 사람을 보면, 아니 ‘책’이라는 것을 상상만 해도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디지털은 차갑고, 아날로그는 따뜻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책은 아날로그다. 차가운 낭만은 없으니까.

가끔 부모님 댁에 가면 스무 살 무렵 읽었던 책들을 집어들 때가 있다. 어차피 지금은 보지 않는 책이기도 하고, 흔적 지우듯 다 가져와 버리면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아서 부러 맡겨두고 있는 책들이다. 살아계신 동안은 그렇게라도 당신들 곁에 아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색바랜 책을 집어 들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 기분 좋은 향기가 피어오른다. 앤디 브루닝이라는 영국의 화학교사가 그 이유를 알아냈는데 종이를 구성하는 화학성분들은 분해되면서 아몬드나 바닐라향 같은 냄새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책향기라는 것이 단순히 기분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국엔 오래된 책을 파는 서점이 제법 남아있다. 그곳에 가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잠든 뇌를 깨우는, 예의 그 기분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지금부터 책향기 가득한 방에서 만난 별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헤이온 와이(Hay-on-Wye)

헌책으로 가득 찬 Hay Castle

한 마을이 온전히 헌책방인 곳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곳 ‘헤이온 와이’다. ‘헤이온 와이’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경계에 있는, 교통편도 변변치 않은 시골 마을이다. 그런 곳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책마을이 된 건 한 남자의 ‘무모한 도전’ 덕분이었다. 그를 서너 번쯤 만났다. 그는 오른쪽 입꼬리가 심하게 올라가 안면이 일그러져 있는데다가 다리까지 절었다.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 상태였다. 발음도 부정확하고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불편한 그를 더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나중에 들으니 뇌종양 수술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에게 헤이온 와이는 고향 같은 곳이었다. 태어나기만 필리머스에서 태어났을 뿐 자란 곳은 헤이온 와이였기 때문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헤이온 와이로 돌아갔다. 학벌로 무장한 친구들이 별을 따러 도시로 갈 때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변방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버려진 소방서와 빈 가게를 사들여 전국을 돌며 실어온 헌책으로 채웠다. 1962년, 첫 번째 책방을 연후 하나씩 늘려 7개까지 책방을 늘렸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시골 마을에 책방이 생기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이 퍼질수록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헤이온 와이는 점점 유명해졌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이제 마을 사람들도 헌책방 사업에 합류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헤이온 와이는 ‘책마을’로 알려지게 됐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작은 마을에 책방이 38개나 됐다. 식당, 카페, 숙박업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가게가 책방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무모한 도전이 일궈낸 기적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리처드 부스였다. 책방이 아니라도 마을 곳곳은 온통 책으로 넘쳤다. 마을 중심에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는, 천 년은 됐음직한 낡은 성이 있었다. 사실은 그냥 낡은 정도가 아니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2층 내부는 걸음을 땔 때마다 바닥이 주저앉을까 봐 조심스러울 정도였는데 그런 곳조차도 헌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벽을 따라 성의껏 책값을 치르고 가져가는 양심책방(Honesty Book)도 있었는데 책꽂이에서 이탈한 책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성의 이름은 헤이(Hay Castle)라고 했다. 헤이 성은 리처드가 첫 번째 책방을 열고 얼마 안 되 구입한 것이었다. 그 자신이 성주였던 셈이다. 그는 무모한 사업을 성공시킨 비즈니스맨답게 엉뚱한 일을 많이 벌였다. 남이 보면 엉뚱한 장난 같지만 그는 항상 진지했다. 한번은 스스로 헤이온 와이에 왕이 되고, 여권과 화폐를 만들고, 마을 친구들을 내각에 앉혔다. 그리고 1977년 만우절 날 신문광고를 통해 헤이온 와이 왕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시내 중심을 행진했다.

 

헤이온 와이 왕국의 총리는 리처드가 타고 다니던 말이었다. 왕이 된 리처드가 자신의 말을 총리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책마을을 홍보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당시 영국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홍보용이었다면 대성공을 이룬 셈이었다. 오랜만에 펼쳐 든 리처드의 자서전에서 엉뚱하지만 천재적인 그의 홍보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침략한 지 400주년이 되는 1975년, 아일랜드 무장독립단체인 IRA를 초대해서
내 소유의 성(Hay Castle)을 점령하도록 내어줄 생각을 했다.” 

그것은 그가 해이온 와이의 독립을 선언하기 2년 전에 세웠던 또 다른 계획이었다. 행동으로 옮겼다면 홍보는 됐겠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하며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헤이온 와이가 유명해지면서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40개가 넘는 책마을이 탄생했다. 탄생이 있으면 소멸도 있는 법. 리처드 부스는 2019년 8월 19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삶을 정리하듯 그는 성을 팔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헌책방이라던 ‘리처드 부스 북스’도 미국 사업가에게 넘겼다.

다시 찾은 헤이온 와이에는 책방이 20개 남짓 남아있었다. 미국 사업가에게 넘어간 리처드의 헌책방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온라인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버티면 전성기가 다시 찾아올까? 유행은 돌고 돈다니, 조금만 힘내 주기를. 리처드 부스는 책은 읽는 게 아니고 들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그게 그의 진심이든 아니든 내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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