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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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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책마을이 있다 1 - 헤이온 와이 책을 읽거나 신문을 펼쳐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특히 그랬다. 마치 움직이는 도서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영국은 유행이 참 늦구나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유행이나 대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면서 느리게 살아가는 고집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영국도 많이 변했다. 급속도로 변했다. 이제는 영국 사람들도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산다. 그래서겠지. ‘책’ 읽는 사람을 보면, 아니 ‘책’이라는 것을 상상만 해도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디지털은 차갑고, 아날로그는 따뜻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책은 아날로그다. 차가운 낭만은 없으니까..
어느 노인의 일상 - 런던 브릭레인 런던의 금융중심지 더 씨티 뒤로 해크니라는 지역이 있다. 해크니 안에서도, 쇼디치, 쇼디치 안에서도 브릭레인이라는 거리는 영국을 넘어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다. 소위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영국식 발음은 ‘홋 플레이스다.’ 아무튼 그런데 해크니는 원래 범죄율과 실업률 면에서 전국 평균을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아주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 미국에 할렘이 있다면 영국엔 해크니가 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거리의 건물들은 낡고, 흉측하게 버려져 있고, 조금이라도 후미진 곳은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했다. 대낮에도 마약을 하는 청소년과 갱들의 싸움으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아주 위험한 지역이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거리 위의 갤러리 삶의 질이라고는 찾아볼 ..
블레츨리 파크와 켈베돈 벙커 2 블레츨리 파크가 가져온 문명의 발전 1939년, 앨런 튜링과 고든 웰치맨(Gordon Welchman) 그리고 여러 동료 팀원들이 영국형 봄(British Bombe)의 초기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폴란드가 개발한 봄에서 크게 발전한 코드 브레이커(Code Breaker)였다. 이어 1940년 3월 암호명 빅토리(Victory)라는 이름의 봄이 가동에 들어갔고 8월에 고든 웰치맨의 디자인을 채택한 두 번째 모델 아그네스(Agnes, 줄여서 Aggie)가 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 한 해 동안 영국형 봄은 178개의 암호를 해독해 냈다. 1942년까지 영국형 봄은 약 200대가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폭격에 대비해 블레츨리 파크 밖 여러 지역에 분산 설치됐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돌며..
심장 가까이 - 런던 메이페어 2 (지미 헨드릭스) (앞 글 '심장 가까이-런던 메이페어 1'에서 이어짐)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11월 27일,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폴 매카트니, 마틴 스코세이지 그리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김정일과도 출생연도가 같다. 그는 인종차별 논란이 뜨겁던 시절에 흑인으로 태어났다. 그것도 정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아버지와 술과 약물중독에 빠진 어머니 사이에서. 그래서 그의 유년기는 지독히도 가난한 동시에 지독히도 불행했다. 가출을 일삼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32살에 세상을 떠났다. 지미 헨드릭스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을 오가며 성장기를 보냈다. 기타가 너무 좋았지만 돈이 없던 그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빗자루를 들고 ‘상상 연주’를 하곤 했..
심장 가까이 - 런던 메이페어 1 (지미 헨드릭스) 유럽 최대의 쇼핑가 런던 중심에 있는 옥스퍼드 스트릿(Oxford Street)과 리젠트 스트릿(Regent Street)은 유럽 최대의 쇼핑가다. 두 길의 거리를 합치면 각각 1.9km와 1.3km로 총 3.2km에 이른다. 리젠트 스트릿은 181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건축가 존 나쉬(John Nash)가 작정하고 쇼핑 거리로 조성한 곳이다. ‘리젠트’라는 이름은 당시 왕 조지 4세(George IV)가 왕자였던 시절의 칭호, 프린스 리젠트(Prince Regent)에서 따왔다. 조지 4세는 존 나쉬와 각별히 친하게 지내면서 버킹엄 궁전과 윈저성을 리모델링하고 바닷가 브라이튼에 인도의 타지 마할을 본딴 새로운 왕궁(Royal Pavilion)을 짓도록 하는가 하면 리젠트 파크와 리젠트..
영원한 자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3 (앞 글 '영원한 자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2'에 이어)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는 이렇게 유명 인사들이 많은데 그중 또 한 사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다. 그는 의약품과 플라스틱, 폭약 등을 만드는 주요 물질인 벤젠을 발견한 사람이다. 암모니아나 이산화탄소, 염화수소 등을 액상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나프탈렌의 분자 구조를 알아낸 사람도 마이클 패러데이다. 그러나 그를 정말 유명하게 만든 건 ‘전자기 유도법칙’이었다. 그는 자석같이 밀어내고 당기는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세탁기, 청소기, 믹서기, 자동차, 각종 농기계 그리고 발..
영원한 자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2 (앞 글 '영원한 자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1'에 이어) 앞서 언급했던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묘도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다. 나는 감히 그가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2012년에 그가 사망한 후 학계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연구와 미디어의 언급이 많아지고 있다. 조금만 더 세월이 지나면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따랐던 칼 마르크스만큼이나 문제적 인물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해본다. 그는 95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21세기 초까지 거의 한 세기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연구하고 기록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종이에 파묻혀 연구만 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자답게 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유럽의 여러 공산당원들과 교류..
영원한 자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1 를 쓴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가 그런 삶을 살았다는 뜻인지 이제 죽어 그렇게 살 수 있게 됐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든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스럽다” 정도의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가 그에게 딱 맞는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것은 측정이 불가능한 추상적 개념이다. 똑같은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정도의 ‘자유’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진부하고 따분하게 들리지만 반박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자유’ 또한 그런 것이다. 를 읽어 보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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