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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스는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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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Bath)는 관광지다. 그냥 관광지가 아니고 해마다 130만 명이 찾는, 영국의 대표 관광지다. 인구는 10만 명이 안 되는데 말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관광이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바스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거기에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는 느끼기 힘든 약간의 낭만까지. 

바스전경

온천물 솟아나는 도시

바스라는 도시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바스는 2천 년 전 로마에 의해 세워진 도시다. 로마가 바스에 도시를 세운 이유 중 하나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온천물이 솟아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로마가 침략하기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켈트족은 따뜻한 물이 솟아 나오는 자신들의 땅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신전을 꾸미고 술리스(Sulis)라는 신에게 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터전도 술리스로 불렀다. 술리스는 지혜와 정의를 상징하는 로마 여신 미네르바의 다른 이름이다. 로마는 바스를 접수한 후 술리스 앞에 물을 뜻하는 아쿠아를 붙여 아쿠아 술리스 (Aquae Sulis)라고 불렀다. 그리고 서기 60~70년 사이에 시작해 약 300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목욕 단지를 건설했다. ‘더 로만 바스 (The Roman Baths)’다. 159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식 문서를 통해 도시의 이름을 바스라고 칭하면서 바스는 목욕탕의 이름에서 확장돼 도시의 이름이 됐다. 그런데 도시의 이름이 아쿠아 술리스에서 곧바로 바스로 바뀐 것은 아니다. 중간에 색슨족이 아쿠아 술리스를 점령한 후에는 바쑴(Baðum), 비싼(Baðan), 바쏜(Baðon)이라고불리기도 했다. ðth로 읽는다. 로마는 목욕에 푹 빠져있는 나라였다. 목욕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목욕탕 장면이 나오고 목욕탕이나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 도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보면 로마 사람들이 얼마나 목욕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로마 사람들이 쌀쌀한 영국에서 따뜻한 물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로만 바스(The Roman Baths)는 바스 관광의 궁극적 이유이자 목적지다. 입장료가 부담스럽다고 하여 바스에 가서 바스(The Roman Baths)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앙꼬 빠진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로만바스의 온천수는 근처 맨딥 언덕(Mendip Hill)에 내린 빗물이 땅속 깊숙이(2,700~4,300m) 스며들어 지열에 의해 69~96°C까지 데워지고 그렇게 뜨거워진 물이 압력을 받아 땅 위로 올라오면서 46°C로 식혀진 물이다. 땅속 깊이 있던 용암이 지표면으로 올라와 분출되는 과정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 온천수의 양이 매일 1,170,000L라고 한다. 바스는 박물관이다. 로마 사람들이 어떤 시설에서 어떤 목욕문화를 즐겼는지 알 수 있는 장소다. 따라서 목욕은 할 수 없다. 영국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로마의 목욕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꿈은 접고 가야 한다. 1978년 어린 소녀가 수막염에 걸려 사망한 후 수질을 조사한 결과, 물에서 네글레리아 파울레리(Naegleria fowleri)라는 치명적인 세균이 검출된 바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방문할 마음조차 사라질까? 그래도 살짝 손을 담가 물의 온도를 느껴 보는 정도는 가능하다.

목욕탕의 도둑들

바스에는 목욕 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유물도 전시돼 있는데 그중 덜 유명한, 그러나 재미있는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것은 허접해 보이는 얇은 금속판 조각으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때는 1979년, 고고학자들이 발굴작업을 하다가 켈트어와 라틴어가 손 글씨로 새겨진 낙서판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 금속 낙서판은 모두 130개 정도였는데 140명 이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번역해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목욕하다가 옷이나 장신구, 보석, 돈을 도난당한 사람들이 절도범들에게 쏟아낸 저주였다. 술리스 미네르바 여신에게 간청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육두문자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두 켤레의 장갑을 도난당했다는 도시메디스(Docimedis)라는 사람은 이렇게 썼다.

“여신이시여, 내 장갑을 훔친 도둑이 정신병자가 되고 장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다른 이는 이렇게 썼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노예든 평민이든, 여자든 남자든 내 지갑에서 은화 여섯 닢을 훔쳐 간 도둑이 피를 보게 하소서.”

좀 더 과격한 저주도 있다.

“내 반지를 훔쳐 갔거나 훔쳐 간 사람을 알고도 침묵하는 자의 눈과 사 지에 저주를 내려주시고 창자가 씹혀 먹히는 고통을 내려주시길.” 

왼쪽이 바스 성당(Bath Abbey), 오른쪽이 로만바스다
아본강

바스는 로마 목욕탕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7세기에 지어진 바스 성당(Bath Abbey)은 성당 자체도 걸작이지만 안내를 따라 지붕으로 올라가면 도시 바스를 가슴에 품어 안을 수 있다. 아본 강(River Avon)을 가로지르는 펄트니 다리(Pulteney Bridge) 위에는 상점과 카페가 있다. 차를 마시면서 창을 통해 발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강물을 감상할 수 있다. 로마 시대에 건설된 도시지만 모든 건축물이 그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바스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150m 길이의 테라스 하우스,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다. 방송이나 영화, 관광지 소개에 단골로 등장하는 로열 크레센트는 오래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로마가 떠나고 천년도 더 지난 1767년부터 1774년 사이에 지어진 조지안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바스를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볼 것 많은 관광지라서 서론이 장황했던 셈인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바스에 살았던 한 소설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다음 글 '오만과 편견의 도시'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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