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

오만과 편견의 도시, 바스

반응형

(앞 글 '바스는 관광지다'에 이어)

<해리포터> 시리즈로 금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J.K. 롤링은 그녀를 모든 작가가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페미니즘의 시조 격으로 알려진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그녀에 대해 여러 가지 찬사를 남겼는데 이런 말도 있었다. 

“여기 1800년대에 글을 쓰던 한 여인이 있다. 증오, 고통, 두려움, 저항과 설교 따위 없이 글을 쓰던 한 여자. 셰익스피어가 그랬던 것처럼.” 

 

Royal Crescent/ 바스에서 열리는 제인 오스틴 축제
Royal Crescent / 바스에서 열리는 제인 오스틴 축제

그녀를 셰익스피어와 비교한 것이다. 2017년부터는 10파운드권 지폐에 그녀의 얼굴이 등장했다. 그전까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자리였는데 화폐 디자인의 진화로 새로운 얼굴에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다윈이 하늘나라에서 서운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다윈도 그녀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하니 그 서운함이 조금은 덜할 것 같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소설은 드라마와 영화로 꾸준히 재탄생되고 있다.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기네스 팰트로, 콜린 퍼스, 키아라 나이틀리 같은 값비싼 배우들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들이다.

오만과 편견 포스터

 

그녀의 이름은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은 1801년부터 1806년까지 바스에서 살았다. 바스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은 1803년에 쓴 소설, 노생거 수도원(Northanger Abbey)에 잘 나와 있다. 바스가 이야기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은 주인공 캐서린(Catherine Moreland)에게 자기 생각을 투영했다. 캐서린은 시골 출신으로 바스를 방문했고 도시의 활기에 매료됐다. 역시 시골에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바스로 온 제인은 캐서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오, 누가 바스에 싫증을 낼 수 있을까?” 

실제로 18~19세기 바스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광지였고 부자들이 많았으며 호화로운 귀족 문화가 넘치는 시끌벅적한 대도시였다. 제인 오스틴이 바스에 대해 느꼈던 호감은 예의 시골 출신 소녀가 처음 도시를 보았을 때 가지게 되는 신기하고 설레는 느낌, 그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관광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인도 그랬다. 그녀는 콧대 높고 화려한 귀족들과 그들의 요란스러운 문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노생거 수도원 다음 작품 <설득(Persuasion)> 에서는 주인공 앤 엘리엇(Anne Elliot)의 입을 통해 바스를 피곤한 지역으로 언급한다. 아니 바스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바스 (Roman Bath)를 몹시도 싫어했던 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생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신데렐라를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를 만나기 위해 도시로 몰려와 파티장을 기웃거리는 여성들을 조롱하고 돈이나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도시에 사는 것에도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나아가 ‘여성다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강요를 거부했다. 오늘날 로맨스 소설의 대가이자 동시에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이유다. 로맨스와 사회비판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대로, 그녀는 그것들을 증오나 설교 없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여 넣었다. 천재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녀는 여러모로 바스와 어울리지 않는 작가였다. 아니, 어울릴 수 없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바스에서의 경험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자산이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제인 오스틴과 부모 그리고 형제는 바스에서 6년 남짓 살면서 무려 4번이나 이사를 했다. 하숙집 옮기듯 이사를 한 것이다. ‘제이나이트(Janeite).’ 제인의 소설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제이나이트들을 위해 그녀가 살았던 주소를 공개하자면 이렇다. 처음 산 곳은 바스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4 시드니 플레이스(4 Sydney Place)였다. 제인은 그 집 옆에 있는 시드니 가든(Sydney Garden)을 자주 산책하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에 바스 부티크 스테이(Bath Boutique Stays)라는 호텔이 들어서 있는데 방마다 제인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붙이고 제인 오스틴 차를 제공하는가 하면 호텔 곳곳을 제인 오스틴의 책으로 장식해 손님을 끌고 있다. 두 번째 살던 집은 그린 파크 빌딩 이스테잇(Green Park Building Estate)이었는데 그곳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 돼 아버지 조지 오스틴(George Austen)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25 게이 스트릿(25 Gay Street)으로, 그리고 다시 트림 스트릿(Trim Street)으로 이사했다. 지금 25 게이 스트릿은 치과다. 제인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박물관, 제인 오스틴 센터(The Jane Austen Centre)가 가까이에 있다.

제인 오스틴 축제에 참가한 시민
제인 오스틴 축제에 참가한 시민

소설가는 속세와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는 글을 쓸 수 없다고 한다. 희망과 갈등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세상 한복판에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치열하게 소통해야 영감을 얻고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인 오스틴은 최적의 환경 속에 있었다. 여덟이나 되는 형제들과 함께 도시와 시골을 옮겨 다니며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을 원했다. 

“먹고사는 문제로 머리가 가득 찬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야!” 

제인이 언니 커샌드라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가면서 어수선한 거실 한쪽에 놓인 손바닥만큼 작은 티테이블에서 글을 써야 했던 제인은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입과 환경을 꿈꾸었다. 그녀는 ‘여유’와는 거리가 먼 생계형 작가였다. 물론 뭔가를 예술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망과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1775년, 제인이 태어났을 때 영국은 산업혁명의 물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탄생한 것도 제인이 한 살쯤 됐을 때였다.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이나 양조업자 또는 제빵사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리사욕 때문이다”. 그즈음 지구는 ‘돈’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돈’은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제인 오스틴도 그런 세상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잘 배운 아버지와 형제들이 있었지만, 가족은 빚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는 형편이 더 어려워져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도 겪었다. 다행히 그녀는 주어진 환경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녀는 가족과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군상들의 성격과 그들이 펼치는 인생을 타고난 감성과 관찰력으로 분류, 저장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흥미진진한 소설 속 캐릭터로 창조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재주가 있다고 해서 세상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신출내기 여성 작가의 소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출판사는 없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여성 작가가 아주 드물뿐더러 차별도 심각하던 시대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아버지도 힘껏 도왔지만, 출판의 길은 너무 멀었다. 모든 출판사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가 겨우 출판을 하게 됐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 36세였다. 제인은 36세에 <이성과 감성>, 37세에 <오만과 편견>, 39세에 <맨스필드 파크>를 잇따라 발표했다. 하지만 모두 익명이었다. 작가가 여성이므로…. 

오만과 편견 초판사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그녀의 소설이 대중, 특히 상류사회의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도 ‘작가 제인 오스틴’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여왕을 인정하는 나라가 그렇게 높고 견고한 성차별의 벽을 가질 수 있었는지. 〈이성과 감성〉은 ‘한 여성 지음(By a Lady)’으로 출판됐다. <오만과 편견>은 아예 작가 이름도 없이 ‘이성과 감성을 쓴 작가 지음(By the author of Sense and Sensibility)’으로 출판됐다. <맨스필드 파크>는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의 작가 지음(By the author of Sense and Sensibility and Pride and Prejudice)’으로, <엠마(Emma)>는 ‘오만과 편견의 작가 지음(By the author of Pride and Prejudice)’으로 출판됐다.

그러면 돈은 좀 벌었을까? 1811년에 발행된 그녀의 첫 번째 작품, <이성과 감성>은 자가 출판이었다. 그녀는 오빠 헨리 오스틴(Henry Austin) 부부로부터 돈을 빌려 출판을 했다. 자가 출판이라서 책 표지에 ‘작가를 위해 인쇄됨(Printed For The Author)’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책을 내주는 곳이 없으니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행히 책은 1813년까지 750권 정도가 팔렸고 제인의 손에 150파운드의 돈이 쥐여졌다. 그것은 제인이 자기 손으로 번 생애 최초의 수입이었다. 36살이 될 때까지 제인은 주로 엄마가 주는 용돈에 의지해 살았다. 당시 150파운드는 오늘날 약 12,750파운드, 2021년 현재 환율로 약 2천만 원의 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정도면 꽤 성공적이라고 할 만했다. 1812년에 펴낸 <오만과 편견>은 110파운드를 받고 출판사에 모든 권리를 넘겼다. 제일 많이 팔린 책은 <맨스필드 파크>였다. 1814년에 출판된 <맨스필드 파크>는 1,250권이 팔려서 320파운드(약 4,200만 원)가 넘는 돈을 제인 오스틴에게 안겨 주었다.

제인 오스틴 초상화

그렇게 조금씩 돈을 벌면서 오롯이 소설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운명의 시간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질병과 싸우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을 앓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불규칙한 통증과 피곤이 반복됐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건강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1817년 7월 18일, 제인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언니 커샌드라(Cassandra Austen)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 커샌드라도 잠을 이루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커샌드라가 통증과 싸우는 동생 제인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하는 게 있어?” 제인이 답했다. “죽음.” 그러면서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게 인내심을 주소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커샌드라는 6시간 동안 제인의 머리를 감싸 안아주었다. 새벽 4시 30분 제인이 언니 커샌드라의 품에서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영원히…. 커샌드라는 조용히 동생 제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제인의 나이 겨우 마흔하나였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고통스럽고 슬픈 밤을 보냈을 캐서린은 동생 제인과 주고받은 편지와 다이어리를 모두 태워버렸다. 커샌드라는 8형제 중 다섯 번째였고 제인은 일곱 번째였다. 둘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형제들 중 가장 친한 사이였다. 사실 제인은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망 3개월 전, 쓰던 소설 The Brothers를 중단하고 유언장을 써 언니 커샌드라를 상속인으로 지명했다. 제인 오스틴은 연애소설의 대가였지만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싱글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연애와 청혼받았던 경험을 소설 창작의 자산으로 삼았다. 커샌드라도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살다가 72세가 되어 동생 제인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떠났다. 평생 자신의 책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보지 못한 제인은 여전히 무명의 작가였고 비석에도 작가로서의 경력은 새겨지지 않았다. 그녀가 위대한 작가였다고 새겨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후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였다. 그녀는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에 안치되었다. 수많은 예술가가 그렇듯, 제인 오스틴의 전성기도 뒤늦게 찾아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의 전성기가 2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012
슬라이드 포토/ 제인 오스틴 축제에는 시민들이 소설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참여한다 

제인은 바스를 몹시 싫어했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바스는 매년 가을 제인 오스틴 축제를 연다. 수백 명의 참가자가 18세기 복장을 하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거리를 행진한다. 제인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은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피츠 윌리엄 다아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표현한 제목이다. 베넷은 첫눈에 잘 생기고 돈 많은 귀족인 다아시를 오만하다고 봤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 자신의 판단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인 것이다. 제인은 화려하고 도도한 바스를 오만한 도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재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자신을 추억하는 박물관을 세우고, 매년 제법 성대한 축제까지 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생각이 바뀔까? 다아시에 대한 생각이 그랬던 것처럼?

오해가 있을 것 같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인 오스틴은 대표작 여섯 편을 모두 햄프셔에 있는 쵸튼 코티지(Chawton Cottage)에서 썼다. 쵸튼 코티지는 현재 제인 오스틴의 생가(Jane Austen House)처럼 보존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하나 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예외 없이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말 것. 사랑 외에 조건은 모두 무의미하므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