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31일 아침, 에든버러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달간 이어진 ‘에든버러 축제’가 끝나는 날, 들떠있던 도시는 차분해지고 에든버러 성 위로는 높고 푸른 하늘이 가을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9월 1일 저녁, 에든버러 레이스(Leith)에 있는 킷치 로드(Kitsch Road)를 찾았다. 에든버러 동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예스 스코틀랜드(YES Scotland)’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지역본부가 위치한 길이었다. 길가에 조그만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주위로 열댓 명이 모여있었다.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안 도밋이 속속 도착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함께 움직일 파트너를 정해주고 있었다.
“처음이죠? 그러면 마이클과 함께 다니시면 될 것 같아요. 마이클은 경험이 좀 있어요.”
테이블 위에는 ‘YES’가 새겨진 가방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그 가방들은 홍보용 전단을 가득 품고 있었다. 테이블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반대쪽 여론과 자기 주변의 분위기, 떠도는 소문을 주제로 약간의 수다를 떨다가, 전단을 챙기고, 리더로 보이는 사람의 설명을 듣고는 둘씩 한 조가 되어 총총히 흩어졌다.
‘예스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찬성하는 캠페인 단체다. 길가에 모여든 이들은 모두 초면이라고 했다. 단체 홈페이지에 뜬 공지를 보고 모인 이들은 레이스 지역의 주민들을 방문해 투표를 독려하고, 여론을 파악하고, 찬성을 설득하기 위해 행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7시쯤 되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각자의 방향으로 떠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안 도밋을 도와 테이블을 근처 사무실로 옮겨놓은 후 그를 따라나섰다. 그는 낡고 허름한 아파트 건물로 들어섰다. 딱 보기에도 실업자나 저소득 노동자들이 살 법한 건물이었다. 이안은 한 집 한 집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렇지만 외출 중인 가정이 많은 듯, 이안을 맞이하는 가정은 열 집에 한 집이 채 되지 않았다. 이안은 인기척이 없는 집에 홍보용 전단을 넣어주고 다음 집, 그리고 그다음 집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도는 동안 겨우 세 집 정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중 한 집은 독립에 찬성한다고 했고, 다른 두 집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안 씨는 차분하게 질문을 던지고, 듣고, 돌아오는 질문에 답하고, 준비한 전단과 YES 스티커를 전달해 주었다.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저도 보수를 전혀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고요. 독립 캠페인은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행동을 시작한 건 이제 한 6개월쯤 됐네요. 자원봉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6개월이나 3개월 전에는 없던, 긍정적인 현상들이죠.”
그는 투표 당일엔 무얼 할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밤 10시까지 투표소와 길에서 독립찬성을 설득하는 캠페인을 계속할 겁니다. 이번에 독립을 할 거라고 확신하지만 만에 하나 실패를 하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여론의 힘이 있기 때문에 기회는 또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몽고메리 스트릿(Montgomery Street) 끝에 있다는 ‘YES 캠페인 숍’을 찾아가는 길엔 ‘YES’ 스티커가 유독 많이 보였다. 독립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창문 곳곳에 파란색 YES 스티커를 붙여 놓고 있었다. ‘NO’ 스티커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YES’ 스무 개에 ‘NO’는 겨우 한 개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 길을 걷는 동안엔 독립의 기운이 목전에 도달했음이 느껴졌다. 가게 벽면엔 ‘함께 더 나은 스코틀랜드를 창조하자’는 대형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독립을 지지하는 그림과 각종 인쇄물, 문구들이 새겨진 각종 상품이 가득했다.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의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무원을 하다가 은퇴했다는 자원봉자 에일린 메이와 바리 맥펠른, 로버 윌킨슨 이렇게 3명의 여인이 가게를 찾는 시민들을 맞이했다. 시민들은 무료로 배포하는 스티커와 포스터를 챙겨갔다. 자원봉사자 여인들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시민에게 독립에 찬성해야 하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그들과 짧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셋 중 가장 젊은 바리 맥펠른은 영연방국가의 국회, 웨스트민스터에 불만이 많았다.
“금융인들은 돈을 훔치고, 정치인들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타깃은 우리 사회에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수백만 명의 극빈자가 생기고 있고, 특히 어린이 빈곤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입니다.”
공무원을 했다는 에일린 메이가 바리의 말을 받았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해요. 웨스트민스터가 결정하는 정책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겐 항상 그들이 우선이에요.”
‘영연방의 무엇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가?’ 하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납니다. 우리 돈이 핵무기를 사고, 무기를 개발하고, 전쟁을 하는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건 우리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돈으로 스코틀랜드 사회를 위해 할 게 많아요.”
가게에 들른 한 시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연방이 있어서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우리, 스코틀랜드 덕분에 먹고사는 거더라고요. 나는 아버지도 영국인이고, 영국인 친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독립되길 원해요. 저는 독립이 되면 영연방국가와 스코틀랜드의 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 투표를 하면 독립이 어려울 수 있지만 18일까지 많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길 바라요”라며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보였다. 나이가 지긋한 다른 시민은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말하며 이번 독립투표는 ‘자연스러운 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코틀랜드는 여러 방면에서 특유의 정체성을 보여 왔어요. 다른 나라들은 독립을 위해서 피를 흘립니다. 우리는 ‘피’가 아니라 ‘투표’를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건 대단한 축복이에요. 이번에 안 돼도 스코틀랜드는 다음 백 년, 그리고 그다음 백 년을 독립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안 도밋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 혹은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스코틀랜드가 경제적으로 충분히 부자인지, 국가를 유지할 만한 지적 역량이 되는지, 화폐와 EU 문제는 대안이 있는지’라고 말했다. 그만큼 독립에 대해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과 두려움에 대해 적극적으로 독립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 교육받은 국민이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입니다. 자연자원도 풍부하죠. 우리는 훌륭하게 나라를 운영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5일 있었던, 영연방 대표 알래스터 달링(Alistair Darling)과 스코틀랜드 대표 알렉스 새먼드(Alex Salmond)의 TV토론은 난상토론 그 자체였다. ‘묻고 듣고 차분히 말하기’가 아니라 ‘각자 동시에 전투적으로 말하기’가 이어졌다. 토론자뿐 아니라 방청객들 속에서도 간간이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토론회가 글래스고에서 있었던 만큼 방청객의 절대다수는 스코틀랜드인이었다. 방청객은 스코틀랜드가 영연방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면 왜 (300년을 함께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좋아진 게 없는지, 왜 빈부격차는 커지고, 어린이 빈민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만 있는지, 국민의료제도는 왜 위협받고 있는지, 왜 핵무기가 필요한 것인지 등등 날카로운 질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나는 몽고메리 거리를 지나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TV토론을 보면서 ‘독립’이 ‘현실’이 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게 느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든버러를 벗어나 아브로스(Arbroath)로 향하는 2시간 내내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초원 위에는 ‘NO THANKS’라는 사인만 줄기차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로스에서 만난 어부들도 독립을 원치 않는다며 “NO THANKS”라고 답했다.
9월 18일은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찬반투표를 하는 날이다. 이제 일주일 남짓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도 스코틀랜드가 독립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스코틀랜드 사람 그 누구도 스코틀랜드가 영연방의 한 국가로 남게 될지, ‘300년 독립의 꿈’을 이루게 될지 장담하지 못했다. 단 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독립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독립이 실패하더라도 투표는 디딤돌이 될 것이며, ‘독립의 꿈’은 계속될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약 10%의 차이로 스코틀랜드는 독립에 실패했다. 나는 밤새 이어진 개표장의 열기를 뒤로하고 스코틀랜드 제2의 도시 글라스고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결과에 승복하기를 거부하거나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잔류파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년의 외침이 시청 앞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스코틀랜드는 독립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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