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크 스트릿 1번지 건물 벽에는 ‘가장 악명 높은 중세시대 감옥(The Clink 1151-1780, Most notorious medieval prison)'이라고 쓰인 파란색 동판이 붙어있다. 그리고 지하에는 귀신의 집처럼 무시무시한 감옥 박물관이 있다. 맞다. 그 건물은 한때 감옥이었다. 그것도 ‘가장most’이라는 표현이 붙을 만큼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연쇄살인범 같은, 잔악무도한 범죄자들을 가뒀던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감옥 자체가 지옥이었다는 뜻이다. 감옥을 등지고 클링크 스트릿을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또 하나의 볼거리인 오래된 범선이 있다. 1577년부터 전 세계를 돌며 금은보화를 약탈해 오는 데 쓰였던 배다. 좋게 말하면 개척이라고 하겠고. 그런데 그 배를 발견하기 전에 텅 빈 바닥과 높고 큰 벽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유적지를 먼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유적은 12세기에 윈체스터 주교가 지었던 윈체스터 궁전(Winchester Palace)의 흔적이다. 중세는 종교인이 정치도 하던 시대인데 특히 윈체스터 주교의 힘이 막강했다. 당시 윈체스터 주교는 위상이 지금의 총리급이었기 때문에 런던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았다. 그래서 런던에 궁전을 짓고 머물면서 종교행사를 하고 국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했다.
종교인이 궁전을 짓고 살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는데 궁전이라는 것이 왕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돈 많은 고관대작은 다 화려한 궁전을 가질 수 있었다. 주교는 궁전과 그 주교 개인이 소유한 시설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교도소는 영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정부와 계약을 맺은 민간이 교도소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민간 교도소라도 정부가 정한 절차와 규정, 규제를 따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클링크는 달랐다. 재판을 앞둔 기소자들을 가둬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주교가 자신의 왕궁 사이트 안에 임의로 만든 감옥, 그게 클링크 감옥이었다. 중세시대 버로우 마켓 주변은 유흥시설로 넘쳤고 도박과 매춘이 성행했는데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윈체스터 주교는 매춘업소들로부터 임대료를 받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매춘업소로부터 얼마나 돈을 많이 뜯어냈으면 매춘여성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빗대어 ‘윈체스터 거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상납을 하지 않으면 클링크에 가뒀다. 중세시대 종교의 타락상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매춘부 등쳐먹기’ 정도는 사실 애교에 속한다.
타락의 시대, 재소자가 돈을 내야 했던 감옥
클링크 감옥의 ‘클링크’는 감옥 문에서 나는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클링크가 악명 높은 감옥이 된 이유는 이랬다. 일단 그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은 숙식비를 지불해야 했다. 일종에 유료 감옥이었던 것이다. 감옥을 관리하는 교도관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런 명목이 아니어도 교도관들은 어떻게든 뒷돈을 뜯어냈다. 죄수나 죄수의 가족 혹은 친구에게 뇌물을 받아 챙기는 건 일상이었고 매춘으로 들어온 여자들이 매춘업을 계속할 수 있게 눈감아 주고 돈을 상납받기도 했다. 수감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되는 죄수는 길가 쪽으로 창이 나 있는 방에 수감해서 지나다니는 행인을 대상으로 구걸을 할 수 있도록 배려 아닌 배려를 베풀기도 했다. 돈을 못 내거나 적게 내는 죄수에게는 손목과 발목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채우고 다양한 고문을 가했다. 재판 전에 수용하는 임시 감옥이었지만 클링크에 들어온 죄수들은 오랫동안 재판을 받지 못하고 늙어 죽거나, 자살하거나,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반면 큰돈을 주고 풀려나는 이들도 있었다. 수감자는 일반 범죄자도 있었지만, 이교도로 낙인찍힌 수도사나 신자 같은 종교인 그리고 정치범이 많았다. 무려 629년 동안 존재했던 감옥이었고 그간 헨리 8세의 종교개혁과 메리 1세의 개신교 학살 그리고 그 이후에 자행된 가톨릭 탄압까지 종교적 격변기를 거쳐왔으니 그럴 만했다. 기록을 보면 교리에 어긋나는 불온서적을 읽거나 보관한 혐의, 교회 다니길 거부한 혐의, 스파이와 음모 혐의로 수감된 사람이 많았다. 2, 3년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잡혀 와서 재판도 없이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는 채무자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윌리엄 워밍턴이나 존 듀크 같은, 당시 유명 배우가 8파운드의 빚을 지고 수감됐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커피 두 잔 값이지만 당시엔 상당히 큰돈이었을 터다. 클링크 감옥은 1780년에 문을 닫았다. 당시 조지 3세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호의적인 법(Papists Act)을 발효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조지 고든 경이 개신교 협회를 조직해 클링크 감옥에 난입했다. 그리고 죄수들을 풀어준 다음 불을 질렀다. 조지 고든 경이 여러 감옥 중에 하필 클링크 감옥을 습격한 것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종교적 양심수들이 많이 잡혀있는, 상징적인 장소였을 테니 말이다. 그때 도망친 죄수들은 다시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방화로 불에 타고 남은 부분은 지금 박물관의 일부로 남아있다. 박물관에는 처형 방법이나 고문 방법, 고문 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클링크 감옥의 악명이 얼마나 높았던지 이런 욕이 유행했다고 한다. “클링크에 던져질 놈.” 감옥이 사라지고 34년이 지난 1814년, 윈체스터 궁도 화재로 최후를 맞이했다. 2015년, 클링크 스트릿 1번지는 건물주가 바뀌었다. 나를 비롯해 그곳에 입주해 있던 회사들은 모두 짐을 챙겨 나왔다. 그 후 그 건물의 입구와 내부는 현대식 사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클링크 스트릿 1번지의 맞은편 아파트는 영화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에서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가 살던 집으로 등장했다.
Buy one Get one free
버로우 마켓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있는데 바로 써벅 성당(Southwark Cathedral, 발음이 사우스워크가 아니다.)이다. 어쩌면 써벅 성당이야말로 버로우 마켓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인지도 모른다. 성당은 1220년에서 1420년 사이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뿐 정확한 건립 연도는 알지 못한다. 606년에는 그 자리에 수녀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애자가 주교에 당선됐을 정도로 동성애 친화적인 교회로 알려진 성당이다. 성가대와 오르간 콘서트가 자주 열리기 때문에 시간만 잘 맞춰가면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 교회의 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셰익스피어 창’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같은, 그가 남긴 작품 속 인물들을 묘사해 놓은 스테인드글라스다. 그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 셰익스피어가 머리를 괴고 누워있는 추모상이 있다. 셰익스피어 극장이 지척이니 써벅 성당을 자주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버로우 마켓에서 장을 보거나 요기도 했겠지. 1607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막냇동생이자 배우였던 에드먼드 셰익스피어(Edmund Shakespeare)가 27세의 젊은 나이로 써벅 성당에 묻혔다. 성당 바닥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영국 슈퍼마켓에 가면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Buy one Get one free’라는 게 있다. 버로우 마켓은 덤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많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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