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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심 속 건축 박물관, 더 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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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씨티는 금융시장이다. 음식이나 물건이 아니라 돈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이 다를 뿐 버로우 마켓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워낙 돈이 많은 곳이다 보니 상점들이 잘 지어진, 폼나는 건물들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씨티를 걸을 때마다 “더 씨티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 박물관이구나” 느끼곤 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꼽히는 타워 오브 런던은 1078년에 세워졌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인 타워 브리지는 1894년에 완공됐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604년에 처음 지어져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4번이나 반복한 끝에 1710년 오늘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시 속의 도시, 바비칸은 1960년대에 건설됐다. 더 씨티는 그렇게 천 살 먹은 건물부터 20세기 건물들까지 어깨와 등을 맞대고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 21세기 마천루가 불쑥불쑥 솟아 있으니 가히 지붕 없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할 밖에. 

 

로이드(Lloyd's)

로이드 빌딩 1
세기를 넘어서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로이드 빌딩
로이드 빌딩 2

더 씨티를 걸을 때마다 내 눈을 가장 사로잡는 건물은 로이드(Lloyd’s of London)빌딩이다. 로이드(Lloyd’s)는 해운과 조선 관련 보험업계의 전통적 강자다. 1912년 영국을 출발해 미국으로 향하던 중 침몰한 타이타닉의 보험회사였고, 911 테러 때 무너진 세계 무역센터의 보험회사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이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세월호의 재보험사도 로이드였다. 로이드 빌딩은 21세기가 아니라 23세기나 24세기 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생김새가 초미래지향적이다. 실제로는 1978년에 지어져 그리 최근 건물이 아닌데도 말이다. 로이드 빌딩이 특이하게 보이는 이유는 외관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지어진 데다가 감추어져 있어야 할 환기구나 각종 배선, 파이프들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리 상자처럼 사방이 투명한 엘리베이터가 말쑥한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남녀를 태우고 14층 높이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SF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로이드 빌딩은 파리에 있는 퐁피두 센터와 우리나라 여의도에 있는 파크원의 설계자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이다. 

걸킨(The Gherkin)

걸킨 빌딩
높은 컬킨 빌딩 주변으로 더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고있다

로이드가 있기는 했지만 런던은, 특히 더 씨티는 높고 번쩍번쩍한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정서적 반감이 컸다. 조상이 남긴 튼튼하고 멋스러운 건축들과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도 새 건물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 건물이 등장하면서 수백 년간 이어지던 보수적인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세인트 매리 엑스(St. Mary Axe)다. 세인트 메리 엑스는 그 생김새로 인하여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오이처럼 생겼다 하여 걸킨(The Gherkin)이라고도 하고 시가처럼 생겼다고 해서 시가(Cigar) 빌딩 이라고도 한다. 그중 걸킨이 가장 흔히 불려지는 이름이다. 걸킨은 알고 보면 참으로 아픈 역사를 디디고 서 있는 건물이다. 원래 걸킨 자리에는 해양 관련 산업 정보를 제공하던 발틱 익스체인지(Baltic Exchange)가 있었다. 1992년 4월 10일 밤, 불상의 사내들이 하얀색 밴 한 대를 발틱 익스체인지 건물 앞에 세워놓고 사라졌다. 그리고 밤 9시, 영국 경찰은 폭탄이 설치됐다는 경고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전화를 받은 지 20분 후인 밤 9시 20분, 고막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폭발 장소는 경고 전화가 알려준 곳에서 800m 떨어진, 하얀색 밴이 세워진 바로 그 발틱 익스체인지 건물 앞이었다. 그 시각 그 일대에 있던 3명이 죽고 91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일랜드 무장 독립운동단체 IRA의 소행이었다.

폭발로 폐허가 된 발틱 익스체인지

 

발틱 익스체인지와 그 일대의 건물은 폭삭 주저 않거나 크게 파손됐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경험한 최악의 공격이었다. 피해액이 당시 돈으로 8억 파운드,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6억 4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자면 2021년 현재 환율로 무려 2조 5천억 원이다. (사진: News Letter)

 

그것은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 분쟁에서 발생했던 1만 건의 폭발 테러 피해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어서일까? 나는 걸킨을 볼 때마다 미사일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런던에 유리 빌딩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도 걸킨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걸킨은 180m 높이의 유리 빌딩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3배가 넘는 높이인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2004년에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걸킨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를 펼치면 2만 4천㎡로 축구장 피치 3개 크기다. 걸킨의 엘리베이터는 초당 6m의 속도로 378명을 동시에 실어 나를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속을 태워본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걸킨 건설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 하나가 있다. 걸킨을 짓기 위해 기반 다지기를 할 때였다. 땅속에서 자그마한 시체 한 구가 발견됐다. 1600년 전, 로마가 지배하던 시절 그러니까 론디니움 시기에 사망한 시신으로 보였다. 탄소연대 측정결과 시신은 350~400년대에 살았던 13~17살 사이의 소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그녀가 론디니움 출신인지 로마 출신인지, 하녀였는지, 평범한 시민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사람들은 어린 소녀의 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숙연함을 느꼈다. 시신은 잠시 런던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걸킨이 완성된 후 빌딩 앞마당에 안장됐다.

로마 소녀 추모비
로마 소녀 추모비. Picture from Fosters + Partners

그리고 그녀의 무덤 앞에 누구든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를 겸한 추모비가 세워졌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추모 벤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로마 아니, 어쩌면 런던에서 온 미지의 어린 소녀 그리고 이 자리에 묻힌 영혼들에게….” 월계수 잎이 그려진 푸른색 대리석 바닥이 그녀가 묻혀있는 자리다. 걸킨은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세운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의 작품이다. 애플 신사옥과 한국 타이어 테크노돔 등 여러 나라에 걸작을 남기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건축 회사다.  

20 펜처치 스트릿(20 Fenchurch Street)

워키토키 빌딩
런던 타워에서 바라본 워키토키 빌딩

20 펜처치 스트릿은 별명이 워키토키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이 사용하던 커다란 무전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워키토키는 템스 강변에서 더 씨티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빌딩이다. 런던 브리지나 타워 브리지에서 바라보면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키 큰 빌딩들의 맏형처럼 제일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워키토키 빌딩을 볼 때마다 도시에 출현한 거대한 괴물이 템스 강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워키토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욕을 가장 많이 먹는 건물이다. 카번클 컵(Carbuncle Cup)이 2015년에 ‘올해 최악의 빌딩상’을 수여했을 정도로 말이다. 카번클 컵은 영국의 건축 잡지 <빌딩 디자인(Budiling Design)>이 소수 비평가 그룹의 도움을 받아 매년 가장 형편없는 건축물을 선정해 불명예를 안겨주는 상이다. 심사 위원장 토마스 레인(Thomas Lane)은 “워키토키에서 장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라고 혹평했다.

워키토키 빌딩 2

외모가 못생겼다는 것인데 더 큰 문제는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건물 유리가 햇빛을 반사해 주변 도로를 뜨겁게 달궜는데 그 온도가 91도에서 117도에 이를 정도로 높았던 것이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 태우기 놀이를 했던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면 상상이 될 것이다. 워키토키의 유리 외벽은 주변 상점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다. 길거리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의 표면을 녹여버리는 문제도 발생했다. 그 사건으로 건설사는 차주에게 약 150만 원을 물어주어야 했다. 한 대학(Imperial College)에서 조사를 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워키토키 빌딩에서 반사된 빛에 노출된 거리가 보통의 거리보다 최고 15배나 많은 방사선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밝기도 직사광선보다 6배나 밝았다. 사람의 눈이나 피부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결국 워키토키 건설사는 유리 표면에 반사를 막아주는 필름을 덮고 햇빛을 막아주는 별도의 차양을 설치했다. 워키토키는 완공 후 빌딩 풍을 일으킨다는 비난도 받았다. 빌딩풍은 고층건물을 지나는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돌풍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정말 최악의 빌딩이구나 하겠지만 반전이 있다. 워키토키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빌딩이다. 이유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정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7층, 160m 상공에 다양한 나무와 식물로 조성된 정원이 있다. 그곳에 가면 비행기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런던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템스 강은 물론이고 타워 브리지, 타워 오브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그리고 테이트 모던 갤러리까지. 스카이 가든에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바도 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커피 한잔 가볍게 하면서 런던을 감상할 수도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상당히 많다. 최악이라는 전문가와 그래도 좋다는 대중.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는 늘 그렇게 큰 간극이 있다. 

더 샤드(The Shard)

샤드
퇴근 무렵 런던브릿지에서 보는 더 샤드

워키토키에서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빌딩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워키토키 정면에 뾰족하게 솟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다. 런던 브릿지 역과 붙어있고 버로우 마켓도 코가 닿을 만큼 가깝다. 더 샤드는 높이가 309.6m다. 파리의 에펠탑보다 9.6m 높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맞춰 완공을 했고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밀려나 2021년 기준 7번째가 됐다. 유럽에서 빌딩 높이기 경쟁은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로 확장해서 보면 중국이 단연 1위다. 더 샤드는 지하 3층, 지상 72층 건물인데 사무실과 호텔, 레스토랑, 병원 그리고 열 채의 아파트(가격과 입주자에 대한 정보는 비밀이다)가 입주해 있는 복합공간이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덮여있는, 말 그대로 유리 건물인데 사용된 유리가 11,000조각, 넓이로 계산하면 5만 6천㎡라고 한다. 걸킨 빌딩을 두 개 짓고도 남는 유리가 사용된 셈이다.

샤드

이탈리아의 건축가 로젠조 피아노(Lorenzo Piano)가 뾰족하게 솟아있는 교회의 첨탑을 상상하며 디자인한 건물이라고 한다. 로렌존 피아노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가다. 그는 로이드 빌딩을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파리 퐁피두 센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런 인물의 작품이라고 해서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정부가 세운 비영리 문화재 보호단체 잉글리시 허리티지(English Heritage)는 빌딩의 모양이 유리 파편(Shard)처럼 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리 파편이 영국 역사의 심장부를 찌르는 행위를 허락할 수 없다며 꽤나 격렬하게 반대했다. 역설적이게도 잉글리시 허리티지가 사용한 표현은 그대로 빌딩의 이름이 됐다. 샤드(Shard)는 유리나 금속의 조각이나 파편을 의미한다. 맨 꼭대기층의 일부를 지붕으로 덮지 않고 짓다 만 것처럼 혹은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게 처리한 것도 파편을 연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더 샤드에서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런던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입장료가 심하게 비싸다는 것.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

바비칸 센터
Photo from&nbsp;The Historic England Blog
바비칸 센터 내부

더 씨티에는 아포칼립스나 아마겟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있다. 다큐멘터리 ‘라이프 애프터 피플(Life after People)’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03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런던 시민이 생각하는 가장 추한 건물’로 뽑힌 전력이 있는 것을 보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지 싶다. 날씨가 좋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없는 날이면 발코니에 걸린 화분과 담벼락을 덮고 있는 넝쿨, 단지 내에 큰 연못과 키 큰 나무 그리고 정원의 식물들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과 묘한 부조화를 이루면서 인류가 사라진 후 방치된 도시를 상상하게 된다. 바비칸 이야기다. 바비칸은 이름처럼 요새 같은 도시다. 입구를 찾기도 어렵지만 출구를 찾기도 어렵다. 단지 내뿐 아니라 건물 내부도 워낙 복잡하게 만들어 놓아서 단번에 목적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혹은 그녀는 분명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이거나 자주 바비칸을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내부가 복잡하기는 바비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영국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다. 오래된 호텔에서 방을 찾지 못해 길을 잃는 것쯤은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는 깊은 빡침과 함께 영국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분석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바비칸은 16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 덩어리다. 페인트칠조차 하지 않은, 민낯의 콘크리트 덩어리. 어딘가 더 손을 대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는커녕 기둥과 벽의 표면을 망치로 쪼아서 자갈이 드러나도록 해 거친 면과 색깔을 강조하기까지 한 그런 건물이다.  전문용어로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잔혹, 잔인, 악랄함을 추구하는 주의다. 브루탈리스트 건축(Brutalist architecture)은 1950년대부터 등장한 건축양식으로 외관이 거대하고 획일적인 덩어리 느낌을 주고 형태에 기교나 융통성이 없는, 기하학적 모습의 건축물을 말한다. 그런 브루탈리스트 건축물은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만든다. 그래서 바비칸은 브루탈리스트 건축물의 대표로 꼽힌다. 바비칸은 123m 높이의 아파트 3동, 7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13동, 연못, 공원, 지하도와 높고 긴 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단지 안에는 영화관, 극장, 도서관, 박물관, 음악당, 음악&드라마 스쿨, 식당, 카페 등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도시 속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말이다. 워낙 무뚝뚝하고 건조한 느낌의 건물이라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바비칸 아트 센터에서는 365일 내내 최고 수준의 공연과 전시가 열린다. 더 씨티는 그런 바비칸 아트 센터를 영국 정부에 기증했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겉보기에 바비칸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공공임대 주택처럼 생겼다. 하지만 바비칸 내 2천여 채의 주거공간은 더 씨티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지어진 것이다. 실제로 돈 많은 정치인, 언론인, 축구선수, 예술가 등이 살았고 또 여전히 살고 있다.

건축가
Chamberlin, Powell and Bon outside their Fulham studio, 1953 &ndash; picture courtesy RIBA Library Photographs Collection

바비칸이 세워진 것은 1965~1976년 사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세워졌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바비칸을 설계한 캠벌린(Joe Chamberlin)과 파월(Geoffry Powell) 그리고 본(Christoph Bon)이 모두 실무 경험이 없는 건축학도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대학교(Kingston Polytechnic)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서른 살 강사들이었다. 골든 레인 이스테이트 (Golden Lane Estate)는 전쟁으로 파괴된 런던에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일종의 주택공사였다. 1951년, 골든 레인 이스테이트는 건축 경연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바비칸의 설계를 맡길 계획을 세웠다. 대회에는 세 명의 강사가 각각 참가했는데 셋 중 한 명이 우승을 하면 나머지 두 명은 공동 설계자로 합류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대회에서 파월이 우승을 했다. 전후 인재가 드문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런 일 때문에 골든 레인 이스테이트에서 지은 건물들은 실무를 익히는 과정이자 학생들의 습작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바비칸이 경험 없는 건축학도의 첫 작품 혹은 습작이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경험 없는 강사들에게 맡긴 공사도, 그걸 맡은 3명의 젊은이들도 또한 놀랍다. 한 건축 전문가에게 런던의 고층건물 허가조건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첫째 친환경적일 것, 둘째 랜드마크가 될 만큼 디자인이 독특할 것. 

 

런던은 그냥 다 같은 런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두 개의 런던을 무시로 넘나들었다. 두 도시 사이에 물리적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만했다. 우리는 흔히 익숙하면 안다고 착각을 한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런던은 나에게 익숙한 도시다. 어디에 숨은 명소가 있고, 어느 길모퉁이에 질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는지, 어떤 길로 가면 혼잡을 피할 수 있는지 아니까 그 정도면 런던에 대해서 좀 안다고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매일 출퇴근 길에 마주친다고 해서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익숙하다고 안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런던장벽
타워힐 전철역에 남아있는 런던 장벽

오늘날 ‘씨티 오브 런던’을 둘러싸고 있던 장벽의 대부분은 흐릿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숨어있는 장벽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타워힐(Tower Hill)부근과 바비칸 일대에서. 바비칸 알페이지 가든(Barbican Alphage Garden)과 로만 포트 게이트(Roman Fort Gate)에 있는 낡은 벽은 아마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런던 장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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