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에서 웨일즈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이런 도로 안내 표지판을 보게 된다. <Welcome to Wales-Croeso i Gymru, 웨일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웨일즈는 영어와 웨일즈어,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한때 영어 사용을 강요당하기도 했지만 1930년대부터 사라지는 웨일즈어를 지켜야 한다는 운동이 일면서 지금은 학교에서도 웨일즈어를 정식 교과과정으로 가르친다. 그래도 생활언어는 여전히 영어이기 때문에 웨일즈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구는 30%가 안 되고 그마저도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다. 웨일즈 인구가 3백만 명 조금 넘는 정도니까 90만 명 정도가 웨일즈어를 사용할 줄 아는 셈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네스코는 웨일즈어를 사라질지도 모르는 ‘취약 언어’로 지정해 놓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3개월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잘 버티고 있던 셈이다.
아무튼 그런 웨일즈 깊숙이에 특이한 마을이 하나 있다.
그 마을의 이름은 <Llanfairpwllgwyngyllgogery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다. 총 58자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이름이라고 한다. 웨일즈어라서 발음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굳이 한글로 옮겨 보자면 ‘산바이르푸쉬곤귀시고개르호른드로포스산트실리오고고고흐’. 뜻은 ‘이 마을에는 소용돌이가 있는, 물살 빠른 바다 근처에 티실리오 교회가 있고, 그 교회가까이에 붉은 동굴이 있고, 그 동굴 가까이에 하얀색 개암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에 성 메리스 교회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니 안 그래도 긴 마을 이름이 더 길게 느껴진다. 이렇게 황당한 마을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척 허무하다. 마을에 뭔가 내세울 만한 풍경이나 랜드마크가 없다 보니 이름이라도 특이하게 지어서 관광객을 끌어보자는 의도였다고. 마을 이름이 그 모양이 된 것은 1860년도였다는데 그때부터 기차역과 우체국은 물론 마을 곳곳에 그 긴 마을 이름이 새겨지게 됐던 것이다. 참으로 엉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마을이름을 다 쓸 수 없는 경우엔 줄여서 쓰기도 한단다. Llanfair PG 또는, Llanfairpwll로.
웨일즈 스노우도니아 건너 첫 번째 마을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은 ‘앵글씨’라는 섬(Isle of Angelsey) 안에 있다. 런던에서 출발을 하면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Snowdonia National Park)을 지난다. 스노우도니아는 산과 계곡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져 웨일즈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앵글씨 섬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꼭 한 번쯤 여행해 볼 만한 곳이다.
스노우도니아를 벗어나면 바로 앵글씨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마을이 바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이름을 가진 ‘산바이르푸쉬곤귀시고개르호른드로포스산트실리오고고고흐’ 마을이다. 앵글씨 섬은 웨일즈에서도 북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다. 서쪽 바다 건너가 아일랜드라서 직접적으로는 아이리쉬 해협 (켈틱 해협이라고도 함)과 접해있다. 섬이긴 하지만 육지와 매우 가깝고 1826년에 세워진 현수교로 인해 섬이라는 생각이 안들정도로 이동이 쉬운 곳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섬이 참 많다. 그래서 앵글씨를 아름다운 섬이라고 소개하기엔 주저함이 있다. 하지만 그 섬만의 숨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섬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나. 이제부터 전설 속으로 사라진 드루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서기 50년, 잉글랜드 대부분의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웨일즈는 게릴라전을 벌이며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 서기 56년, 로마 장군 수토니우스 폴리누스(Suetonius Paulinus)가 앵글씨 공격에 나섰다. 앵글씨는 앞서 거석문화를 이야기할때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켈트족 사이에서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드루이드의 성지였다. 앵글씨의 상황은 급박했다. 육지에 살던 많은 부족민들이 로마군을 피해 섬으로 들어와 드루이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로마군은 그런 앵글씨를 제압해야 영국 정복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마군이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 앵글씨 해안가에는 무기를 든 남자들이 집결해 있었고 여자들은 뛰어다니며 괴성을 질렀다. 드루이드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들고 주문을 외웠다. 로마 병사들은 드루이드가 신비한 재주를 부리고 인간을 제사상에 제물로 사용한다는 것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였다.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려움을 떨치고 바닥이 평평한 보트와 수영으로 낮은 바다(해협)를 건너 저항하는 모든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 질렀다. 그것은 대학살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장을 하고 있든지 아니든지 가리지 않고 광기에 휩싸여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드루이드가 신성시하는 참나무 군락을 파괴하고 신전과 제단도 불태웠다. 로마는 그렇게 저항의 심장을 박살 냈다.
로마의 제거 대상이었던 드루이드
하지만 웨일즈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는 그 후로 2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다. 웨일즈 곳곳에서 게릴라 식 저항이 끈질기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로마군이 앵글씨를 공격한 궁극의 이유는 드루이드 때문이었다. 로마는 드루이드를 영국뿐 아니라 갈리아, 즉 프랑스와 서유럽 지역을 광범위하게 지배하던 켈트족의 실질적 지도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럽 (당시 갈리아)을 완벽하게 정복하려면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앵글씨는 그런 드루이드를 양성하는 본부였다. 드루이드는 스스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이다 보니 당시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보다는 그들 스스로 문서로 기록하는 행위를 막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드루이드는 모든 걸 말로 가르치고 암기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드루이드라는 신분이 존재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약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는데 그 기록의 대부분은 로마가 쓴 것이었다. 그중 로마의 황제이자 독재자였던 율리어스 카이사르(줄리우스 시저, Julius Caesar)가 남긴 <코멘타리 드 벨로 갈리코 (Commentarii de Bello Gallico)>라는 책이 가장 유명한데 드루이드에 대해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한 출정에서 켈트족과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던 장군이었다. 자연히 드루이드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 켈트족이나 드루이드는 적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드루이드는 갈리아(켈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권계급이었다고 하면서 그들은 우주와 지구의 크기, 자연 세계, 불멸의 신, 전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한마디로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난,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드루이드는 살아있는 인간을 재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을 주관했는데 평소에는 범죄자를 재물로 쓰지만 범죄자가 부족할 때는 멀쩡한 사람도 재물로 이용했다. 흉측하게 생긴 커다란 나무 인형에 사람들을 산채로 집어넣고 태워서 죽였다”라고 썼다.
이런 기록에 대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켈트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노라 채드윅(Nora K. Chadwick)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로마와 그리스는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드루이드와 유대인, 기독교까지 묶어서 야만적 특징을 부여하곤 했다”. 그러니까 카이사르가 드루이드 소탕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드루이드를 야만족이라고 누명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드루이드가 사라지는 데는 로마의 역할이 가장 컸다.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who ruled from 1437 CE)는 “갈리아에서 말장난으로 치료행위를 하는 자들을 금지한다”며 드루이드의 치유 혹은 치료행위를 금지시켰다.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who had ruled from 27 BCE until 14 CE)는 “드루이드는 로마시민이 될 수 없다”며 정복지의 국민을 로마시민으로 받아들이던 관례에 반하는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Emperor Claudius who ruled 4154 CE) 때 법으로 만들어졌고 드루이드의 종교 행위도 금지됐다. 드루이드에 대한 기록은 로마의 역사가, 철학자, 법관 등이 쓴 책에서 주로 언급되었는데 2세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마법사의 귀환'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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