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베리와 스톤헨지는 여전히 드루이드리, 위카, 히텐리 같은 현대 이교도들에게 신성한 장소다. 에이브베리는 무료다. 스톤헨지는 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스톤헨지도 1년 중 해가 가장 긴, 6월 20일, 하지 때는 무료로 개방을 한다. 그날만큼은 울타리도 없고 접근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 돌을 올라타고 만질 수도 있다. 두 장소 모두 하짓날에는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수많은 이교도와 히피들이 몰려든다. 밤부터 새벽까지 돌 사이로 신비롭게 지고 뜨는 해를 보며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는 시를 읊고, 어떤 이는 주술을 외우고, 어떤 이는 그들 나름의 의식을 치른다.
에이브베리와 스톤헨지를 세운 주인공은 물론 알 수 없지만 기원전 2~3천 년 경부터 영국에 살던 이베리안(Iberian) 들이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이베리아족은 이베리아반도, 그러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던 종족을 말한다. 여러 학설이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살던 종족이 이베리아로 옮겨가 정착했다는 것과 지중해 동쪽에서 살던 종족이 이베리아로 옮겨가 정착했다는 설이다. 기원에 기원을 파고들면 천지창조의 순간까지 가야 할 테니 그냥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간 종족이 영국에 살면서 기원전 문화를 장식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들은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꽤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활과 화살, 투구와 방패를 사용했고 돌과 나무로 건물을 세우고 도로와 사원을 지었다. 에이브베리와 스톤헨지를 이베리안들이 세웠을 것으로 보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에는 영국이라는 섬(땅)을 의미하는 이름도 없었고 국가의 형태를 갖춘 나라도 없었다. 섬의 인구는, 물론 알 수 없지만 3~4백만 명, 평균 수명은 25세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런 섬에 켈트족이 등장했다. 그들은 기원전 600년과 300년, 두 차례에 걸 쳐 유럽 본토에서 넘어와 섬을 점령했다.
사실 하나의 종족이 하나의 언어로 섬을 독차지하고 지키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점령’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침입’, ‘이주’, ‘확산’ 등 어느 단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켈트족이 들어온 무렵부터 섬이 ‘브리튼 Brita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브리튼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면서 탐험가였던 피테아스(Pytheas of Massalia)가 붙였다.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기원전 325년에 영국과 아일랜드뿐 아니라 북극의 극지대까지 탐사하고 켈트족과 게르만족을 만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직접 남긴 여행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고 그 의 기록을 참고하거나 인용한 후대인들의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 지리학자 겸 역사학자 스트라보의 지오그라피카(Strabo’s Geographica), 로마의 과학자 플리니의 자연사(Pliny’s Natural History) 그리고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하던 역사학자 디오도루스의 시실리스의 세계사(Diodorus of Sicily’s Bibliotheca historica) 같은 책에 “피테아스가 말하길...” 혹은 “피테아스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피테아스가 영국을 라틴어 Prettanik라고 기록한 것을 인용 혹은 참고했다. 고대 영어는 종종 B를 P로 썼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람들은 Bretannik라고 이해한다. Prettanik가 ‘몸에 그림이 그려진 사람’을 뜻하는 켈트어(=웨일즈어) Pretani를 라틴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피테아스가 만난 켈트족들이 몸에 그림을 그리거나 타투를 새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이름 붙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모양이나 그림을 뜻하 는 고대켈트어 Pryd에 ein을 붙이면 Prydein가 되는데 이것 역시 중세 웨일즈어로 브리튼 섬 Island of Britain이라는 뜻이다. 종합하자면 라틴어로 Prettanik와 고대 웨일즈어 Pretani (중세 Prydein, 현대 Prydain)가 Britain으로 발전했다는 것인데 이게 ‘몸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는 뜻이라니 영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타투에 열광을 하는지 알겠다. 브리튼은 ‘그레이트 브리튼’이라고도 하는데 영국 본토만을 가리킨다. 잉글랜드, 웨일즈 그리고 스코틀랜드.
영화 ‘더 디그(The Dig)’에서 두 주인공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죽고 결국 흙이 돼요. 계속 살아갈 수 없어요”,
이디스 프리티(Edith Pretty) 부인이 이렇게 말하자 고고학자 베질 브라운(Basil Brown)이 답한다.
“제 생각은 달라요.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긴 순간부터 우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됐어요. 그러니 정말로 죽는 게 아니죠.”
스톤헨지와 에이브베리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사실은 대한민국이야말로 거석문화의 메카라는 사실을 아는가? 4만여 기로, 전 세계 절반의 고인돌이 한국에 있다. 그중엔 세계문화유산도 여럿 있고 말이다. 에이브베리에 얽힌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이거다. “배움이든 돈이든 가졌다면 그들처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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