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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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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한 바위들의 행렬

별로 유명하지 않은 유적지, ‘에이브베리(Avebury)’로 짧은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런던 중심에서 출발하면 서쪽으로 135km,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에이브베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인돌, 스톤헨지에서도 멀지 않은, 아담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스톤헨지처럼 거석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스톤헨지가 석기시대 때 조성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벌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바위들의 집합체라고 한다면 에이브베리는 마을의 일부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의 행렬이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면적이라고 한다.

바위 서클
마을 전역에 흩어져있는 바위 써클

전문가들은 에이브베리가 천문학 또는 종교적 목적으로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모두 가설이고 추측일 뿐이다. 상상 밖의 모습으로 세워져, 상상 밖의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4~5천 년 전에 세워져 온전한 형태도 아니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바위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고고학이라는 게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면 “생각하는 거 피곤해” 하고 금세 흥미를 잃기도 하지만 뭔가 그럴싸한 단서를 찾거나 들으면 금세 상상의 나래를 펴고 오천 년, 만년 전의 세계로 빠져든다. 상상은 타임머신보다 빠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믿어보면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는 에이브베리의 바위들이 큰 것은 남자를, 작은 것은 여자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바위의 배열은 탄생과 삶 그리고 소멸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하고 말이다. 바위 중에는 ‘아담과 이브’, ‘악마의 의자’라고 이름 붙여진 바위도 있다.

방문객
중세시대 복장을 한 방문객

어떤 이는 밤이면 전설 속의 영혼들이 바위 사이를 산책한 다고 한다. 그래서 바위에 치유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바위를 안거나 손바닥을 대고 바위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 에이브베리판 믿거나 말거나 시리즈는 이게 다가 아니다. 에이브베리에는 레드라이온(Red Lion)이라는 펍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실내에 우물이 있다. 지금은 투명한 유리로 덮여 테이블로 사용이 되고 있다. 한때 물로 차 있었을 그 속이 들여다 보이는 우물에는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무서운 전설이 서려있다.

레드라이언 펍
무서운 전설이 서려있는 레드라이언 펍

레드라이언은 400년이 넘은 건물로 1600년대엔 농장이었다. ‘플 로리’라는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1642년 내전(English Civil War)이 발발했다. 남편은 소집 명령을 받았고 집을 떠나 전쟁터로 갔다. 남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예고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못 볼 꼴을 보고 마는데...

우물
플로리가 던져진 우물은 유리에 덮혀 식탁으로 쓰이고 있다.

침대 위에 낯선 남자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화가 난 남편은 부인 플로리를 총으로 쏴 죽이고 목을 칼로 벤 다음 우물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로 봉인을 해 버렸다. 그때부터 플로리는 유령이 되어 수염을 기른 남자를 찾아 마을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찾는 수염을 기른 남자가 자신을 죽인 남편인지 그날 사랑을 나누던 애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펍에 수염을 기른 손님이 오면 홀에 전등이 심하게 흔들리거나 물건들이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한때 펍은 여관도 겸했었는데 방에 유령이 자주 출현해 지금은 펍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펍에는 플로리 말고도 어린아이를 포함 최소 4명의 귀신이 더 있다고.

 

한때 악마의 돌 취급 받기도

에이브베리 템플

에이브베리는 기원전 3000년에서 2400년 사이에 조성이 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고학에서, 특히 기원전 고고학에서 몇백 년의 차이는 기본이다. 에이브베리에 조성된 원의 반경은 347m다. 원래는 마을이 없는 빈 들판에 높이 3~6m에 이르는 바위 98개가 원형으로 나열돼 있었고 원형의 바위들은 다시 5.4m 높이의 둑과 6m~9m가량의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 북쪽으로 27개, 남쪽으로 29개의 작은 바위들이 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의 힘이 막강해지고, 우상숭배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던 중세시대에 이르러서는 악마의 돌로 취급받으면서 많은 바위가 묻히거나 훼손됐고,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마을이 확장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바위들을 주워다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하는 바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안과 의사이자 성직자였던 윌리암 스턱클레이(William Stukeley, 1687-1765)라는 사람이 고고학에 관심이 지대해서 스톤헨지와 에이브베리를 연구해 기록으로 남겼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1934년 알렉산더 케일러(Alexander Keiller)라는 사람이 묻힌 바위들을 재배치하고 복구할 수 없는 자리에는 표식을 남겨 위기에 처한 에이브베리를 구해냈다. 에이브베리를 다녀온 후 그곳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에이브베리에 조금은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윌리엄 스턱클레이와 존 루벅 그리고 알렉산더 케일러라는 세 인물을 알게 되어서다. (다음 글 '돌보기를 금처럼 한 사람들'로 이어짐)

 

악마의 의자
이 돌의 이름은 '악마의 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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