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호에 괴물이 살 가능성
천오백 년을 이어 내려온 전설이 있다.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 전설을 직접 경험했다고 증언했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 증언의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스코틀랜드 네스호 이야기다. 네스호에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네스호에 산다는 네시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가장 오래되었고, 목격자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네스호는 스코틀랜드 북부, 다시 말해 하일랜드 지방에 있는 길이 약 36km, 너비 약 1.6km의 좁고 긴 호수다. 깊이는 대략 230m 정도라고 한다. 칼레도니안(Caledonian) 운하를 통해 북해와도 연결이 되어있다. 네스호에는 고농도의 토탄이라는 물질이 풍부해서 물고기가 많이 산다. 수량도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방의 호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전문가들이 네스호에 괴물이 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네스호에서 처음 괴물을 목격한 사람은 기록상 성 콜롬바(St Columba)다. 서기 565년 8월 22일, 성직자 콜롬바가 픽티쉬(Pictish)라는 왕을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 네스호의 한 나루터에 도착해 호수를 건너려는데 배가 호수 건너편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괴물이 뱃사공을 잔인하게 집어삼켜 버렸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성직자는 마을 사람 중 한 남자에게 건너편 배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남자가 배를 가져오기 위해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때 호수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괴물이 나타나 굉음을 내며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마을 사람들이 겁에 질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 콜롬바가 손을 들어 허공에 십자가를 그리고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괴물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는 “너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썩 물러가라!”라고 소리쳤다. 괴물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겁에 질려 도망을 쳤고 남자는 무사히 물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서기 565년경이었는데 이후 지금까지 네시를 봤다는 목격자가 수도 없이 나타났다. 네시는 통상 몸뚱이가 크고, 목이 길고 머리가 작은 공룡의 형태로 길이가 약 12m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놈이 북해와 호수를 드나든다는 것이다. 괴물 네시의 목격자가 급증한 것은 네스호 부근에 자동차 도로가 생긴 1933년부터였다. 도로가 생기기 전, 1930년 7월에 네스호 북쪽 끝을 항해하던 세 사람 6m 길이의 낙타나 악어처럼 울퉁불퉁한 등을 가진 괴물이 빠르게 헤엄치는 걸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1933년 4월엔 알디 멕케이(Aldie Mackay)라는 사람이 네시가 네스호를 북쪽으로 거슬러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고. 같은 해 존 멕케이 부부도 물속에서 헤엄치는 네시를 보았다고 했으며 또 같은 해에 조지 스피어 부부도 물밖에 나와 있는 거대한 동물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1999년엔 미국인 노라와 마이크 존스 부부가 두 차례에 걸쳐 네시를 보았다고 했다.
네시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34년 4월 19일 자 데일리 메일에 한 장의 사진이 실리면서부터였다. 데일리 메일은 1면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특종: 외과의사가 찍은 괴물 사진"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로버트 케네스 윌슨 박사가 제보한 이 사진에는 흐릿한 물속에서 긴 목을 내놓고 있는 공룡과 흡사한 동물이 담겨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괴물이 약 1억 9천만 년 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 살았던 해양성 파충류와 닮았다며 흥분했다. 이후 괴물의 존재를 파헤치기 위한 탐사가 줄을 이었다. 1958년 영국의 학계를 중심으로 조사단이 구성돼 첫 탐사작업이 펼쳐졌다. 1992년에는 영국 자연사 박물관 등 관계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수중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해 네스호를 샅샅이 조사했다. 그러나 그런 대대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네시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데일리 메일의 사진이 가짜로 밝혀진 것이다. 60년이 지난 1994년 선데이 텔레그래프지에 의해서 말이다. 그 사건의 내막이 재미있다.
목격자의 속출로 네스호의 괴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데일리 메일은 영화제작자 겸 탐험가인 마르마듀크 웨더럴(Marmaduke Arundel Wetherell)에게 거액의 지원금을 약속하며 탐사를 부탁했다. 마르마듀크 웨더럴은 1933년 12월, 탐사에 나섰고 12월 20일 탐사 시작 이틀 만에 두발에 네발가락을 가진 커다란 발자국을 발견했다. 데일리 메일은 그 증거를 토대로 괴물이 실존한다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그 후 2주에 걸친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확인 작업이 이어지고 전 세계의 관심 속에 결과가 발표됐다. “두 개의 발자국은 같은 것이며 우산의 받침으로 사용되던 하마 다리로부터 나온 것이 다”. 한마디로 동물의 발자국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이에 화가 난 웨더럴은 아들 이안 웨더럴(Ian Wetherell)에게 진짜 괴물을 보여주자고 제안하면서 장난감 잠수함을 사 왔고 이안의 이복형제인 스펄링(Christian Spurling)이 나무로 만든 목과 머리를 붙여 호수에 띄웠다. 그리고 이안이 사진을 찍었다. 이 조작사건엔 등장인물이 좀 많다. 듀크가 사진 제보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 친구 챔버스(Maurice Chambers)에게서 소개받은 외과 의사 윌슨 박사에게 촬영한 필름을 주었고 약국에서 현상된 이 사진은 결국 ‘외과 의사 윌슨의 사진’으로 알려지면서 네시의 존재를 확신케 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활약했다. 진실은 그로부터 60년이나 지난 1994년에서야 밝혀졌다. 네스호 연구자 마틴(David Martin)과 앨리스터 보이드(Alistair Boyd)가 90세로 고령이 된 스펄링을 찾아갔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스펄링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진실을 털어놓은 것. 스펄링은 사진 조작에 가담한 마지막 생존자였고 그의 자백은 선데이 텔레그래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또 하나의 조작이 있었다. 1970년대엔 특히나 많은 탐사가 이어져 감도 높은 음파탐지기와 잠수함, 카메라가 동원되었고 무려 250시간에 걸쳐 수중탐사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매사추세츠 벨몬트의 응용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Applied Science) 연구원 라인스(Robert Rines)는 1972년 8월 9일 아침,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나가 음파탐지기로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종일 허탕을 치다가 운 좋게 괴물로 추정되는 사진 한 장을 얻었다. 그는 사진을 미국으로 보내 현상했다. 처음엔 사진이 너무 희미해서 해석이 어려웠으나 캘텍의 제트 추진연구소에 있는 고성능 컴퓨터로 확대한 결과 좀 더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괴물의 지느러미였다. 1976년, 라인스와 그의 동료는 학계에 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이 발표한 사진은 괴물의 지느러미로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고 전 세계로 배포되었다. 학계는 네시에게 정식으로 네시테라스 롬보테릭스(Nessiteras Rhombopteryx)라는 학명까지 부여했다. 그러나 훗날 지느러미는 라인스에 의해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을 컴퓨터로 확대하면서 애매모호한 부분을 지느러미로 보이게 그렸다는 것. 네스호의 전설을 현실로 확인하고 픈 인간의 욕망이 황당한 사기극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이다. 네스호의 전설이 그만큼 큰 마력을 지녔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그 후로도 네시 찾기는 계속됐고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망스러운 결과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2003년에는 공영방송 BBC가 잠수함과 첨단위성 탐사기술을 동원해 호수를 샅샅이 탐색하고 600차례에 걸쳐 수중 음파탐지를 실시하는 등 대대적으로, 그야말로 대대적으로 괴물 찾기에 나섰으나 네시를 찾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BBC는 관광객을 상대로 네스호에 나무토막을 띄워 착시현상에 대한 실험도 진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그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을 본다.”
가짜와 거짓 그리고 착시현상까지 마구 뒤섞여버린 전설에 한 가지 더해진 것이 있으니 네시가 지구 온난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됐다는 가설이다.
기후변화가 괴물을 죽였다
미국의 라인즈 응용과학 아카데미(Rines Academy of Applied Science)는 전파탐지기와 레이더 분야의 권위자인 로버트 라인즈박사(Dr. Robert H. Rines) 가 세운 단체이다. 라인즈 아카데미는 2001년 네스호를 조사해 브이자 모양의 물결이 잔잔한 호수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음파탐지기로 호수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체의 형상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민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바다생물의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괴물이 바다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8년 라인즈 응용 아카데미는 한 번 더 수중 카메라와 음파탐지기를 동원해 호수를 조사한 후 이런 가설을 발표했다. “음파로 탐지되는 물체가 거의 없고 네시를 봤다는 목격자도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아 괴물이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환경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을 수 있다.” 2018년 뉴질랜드와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의 대학과 연구 기관이 합동으로 호수에 대한 DNA를 조사해 2019년 발표했다. 조사결과 많은 뱀장어 DNA가 발견됐다. 조사단장 닐 젬멜(Prof. Neil Gemmell) 오타고 대학교(Universities of Otago) 교수는 “네스호에서 뱀장어가 잡히거나 발견된 적은 없지만 거대 뱀장어가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충류 계열의 DNA는 전혀 발견되지 않은 만큼 호수에 네시가 살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네스호에는 정말 괴물 네시가 없는 걸까?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는 동물에 대한 연구를 ‘숨은 동물학(Cryptozoology)’이라고 한다. 버나드 휴벌먼스(Bernard Heuvelmans)라는 사람이 만든 용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약 1천3백만 종으로 추정되는데 인류에 알려진 것은 불과 1백70만 종이다. 실제로 지난 2세기 동안에 콩고의 오카피,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드래건 등 수천 종의 새로운 생물들이 발견됐다. 그중 공룡과 함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실러캔스는 6천5백만 년 만에 개체를 찾아낸 것이라고 한다. 지구상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생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없다, 있다”는 상반된 논란 속에서도 네스호를 찾는 세계인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소위 ‘네시 헌터’들이다. ‘네시 헌터’들은 전문가에서부터 아마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미국, 일본, 스위스, 노르웨이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은 괴물 네시를 찾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장비를 총동원한다. 전 세계에서 네시 헌터와 목격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심포지엄을 열기도 한다. 네시에겐 국제적인 팬클럽도 있다. 네시 팬클럽은 인터넷 웹캠을 통해 24시간 네스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시 포획반대’ 운동도 펼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전설 속의 괴물에 불과한 네시가 1912년 제정된 동물보호법(Protection of Animal Act)에 의해 법적인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1년 스위스의 탐사팀이 네스호에서 네시를 포획하기 위해 그물을 사용하려 하자 존 그리어슨 감독관은 그물이 괴물에게 상해를 줄 수 있다며 금지했다.
이야기의 힘
네스호의 자연경관과 괴물 네시를 보러 몰려드는 관광객이 한해 최소 200만 명이다. 매년 6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다. 이야기의 힘은 그렇게 세다. 멀고 척박한 땅에서 호수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설은 수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양식이 되었다. 그것도 천년에 걸쳐 대대손손 말이다. 전설 속의 괴물 네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규명되지도 않은 그 정체불명의 괴물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카메라를 돌리고, 탐사선에 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전설 속의 괴물이 베일을 벗고 나타나주길 바랄까? 영원히 전설로 남아주길 바랄까?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탐사 결과를 접한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 다. 괴물은 네스호가 아닌 그들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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